일본 홋카이도(北海島) 문학관 탐방기
우포시조문학관 상주작가 이 선 중
사단법인 한국문학관협회는 2023년 10월 15일(일)부터 10월 18일(수)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의 최북단섬인 홋카이도에 해외문학관 탐방을 하였다. 나는 본디 일본에 대한 적의가 높아서 굳이 일본을 여행한다는 생각이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일본의 북해도에 대해서만큼은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터라 여행팀에 합류하였다. 그 동경은 첫째 북해도 눈축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점과 둘째는 엉뚱한 연유이지만 극진가라데의 창시자 최영의(배달)의 고행의 역사가 깃든 곳이기도 해서이다.
한국에서 북해도 가기보다 더 버거운 인천공항까지 창원에서 심야 우등버스를 타고 가서 7시20분에 이륙, 9시 반 경부터 내려다보이는 북해도는 평화로운 농촌의 풍경을 온전히 보여주었다. 같은 농촌이지만 한국의 농촌보다는 더 정돈되고 더 아기자기한 모습이 일본인의 성정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듯했다.
공항에서 오타루시로 이동해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첫 일정으로 시립 오타루문학관을 방문했다. 문학관의 가메이관장이 직접 우리 일행을 맞이하고 안내까지 해주셨는데 문학관의 규모는 작고 소박한 편이었다. 고바야시 다카지, 이시카와 다쿠보쿠, 오카다 사부로, 이토 세이를 비롯하여 오타루와 인연이 있는 작가의 저작물과 문예지, 생전의 육필 원고, 서간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었다. 한국 문학관들이 그렇듯이 방문객들이 적은 편이었고 지역의 문화 행사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었다. 마침 서예작품 전시회가 있었는데 한때 붓을 잡고 안진경체를 마친 내 기준으로 보니 붓을 잡은 지 2~3년 된 초보 작품도 많았고, 간혹 달필의 경지에 있는 작품도 보였다.
첫날 오타루 일정에서 가장 경이로웠던 코스는 청어가 무진장한 북해도에서 그것으로 갑부가 된 아오야마 가문에서 지은 키힌칸(우리말로 귀빈관)이었다. 일본의 전통식 작은 정원이 단아하게 꾸며져 있었고 고궁처럼 엄숙하면서도 품격 있는 실내의 구조와 소품에 연신 탄성을 나올 정도로 그 규모가 대단했다. 뒤이어 오타루 운하로 이동해서 비교적 젊은 일본인들이 한가롭게 운하 주변에서 데이트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결같이 겸손하고 남을 배려하는 모습,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 조신한 걸음걸이 등을 보고 생활 문화 측면에서는 일본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당연히 일본인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많이 왜곡되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둘째 날은 특별히 문학관 탐방 일정이 잡히지 않은 채 순수하게 북해도 관광으로만 짜여 있었다. 일본도 월요일엔 문학관이 휴관하기 때문이다. 조식 후 홋카이도의 후지산이라 불리는 요테이산의 후키다시 공원에서 일본 100대 명수에 속하는 샘물을 마셨다. 들고 있던 생수를 버리고 그 물을 받아 마셨는데 확실히 물맛과 느낌이 상큼하여 살아있는 물을 먹는 느낌이 들었다. 큰 물통이 있으면 받아오고 싶어질 정도였다. 공원 주변의 산책로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고 공기도 신선해서 여유롭게 한 바퀴 둘러보았다.
곧이어 우리나라 백두산의 천지처럼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칼데라 호수인 도야호수로 갔다. 호수 면적이 얼마나 큰지 호수에 파도가 일렁일 정도였다. 깊이가 무려 180미터라고 가이드가 설명하길래 내가 우리나라 천지가 더 깊을 거라고 말했다가 가이드와 내기를 걸게 되었다. 검색해보니 백두산은 깊이가 무려 384미터였다. 일본하고는 가위 바위 보도 지면 안된다는 민족의식이 투철해서인지 어깨가 으쓱해지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칼데라 호수를 쉽게 갈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였다. 유람선으로 호수를 가로질러 오가며 주변 경관을 살피기도 하다가 도야호수 안의 나카지마섬에서 잠시 정박해서 호수의 풍경을 둘러보는 행운도 누렸다.
그 후 일본 제1호 세계지오파크에 등록된 유명한 활화산 중 하나인 로스산로프웨이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정상부에서는 등 뒤로 도야호수가 앞으로는 저 멀리 태평양이 은빛 윤슬을 반짝이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바다 일부분일지언정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고 조금 더 다가가고 싶은 충동이 울컥 솟아올랐다. 이날 밤에는 호수 주변에서 소박하지만, 불꽃놀이 쇼가 펼쳐졌다.
셋째 날에는 본격적인 문학관 탐방을 나섰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빙점’의 작가
‘미우라아야코’ 문학관을 방문하였다. 1964년 朝日新聞社의 당시 우리나라 화폐 가치 1억원 이상의 현상문예에 ‘빙점’으로 당선되어 국민작가로 등극한 미우라아야코의 약 35년간 집필의 역사가 잘 정돈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관계자께서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셨는데 다른 문학관에 비해 현대적인 구조를 가진 전시 공간을 잘 꾸며놓았다. 아내가 집필 활동에 진력할 수 있도록 살뜰히 외조를 해준 두 살 연하의 남편 三浦光世과의 다정한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문학관 주변에 있는 울창하고 키가 큰 삼나무 주변 산책로에 있는 부부의 사진 모습은 겨울동화의 한 장면 같았다.
다음으로 소설가 이노우에야스시 문학관으로 이동하였다. ‘돈황’, ‘공자’, ‘풍도’ 등 비교적 역사소설 쪽의 작품을 많이 집필한 작가였다. 특히 ‘풍도’는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을 소재로 하면서도 한반도의 고려를 무대로 고려인인 충렬왕과 김방경을 주인공으로 해서 일본 원정에 따른 고려 백성들의 고난과 투쟁기를 그린 작품을 집필한 점이 관심을 끌었다.
북해도 최대의 도시 삿포로로 이동한 우리는 와타나베준이치 문학관으로 이동하였다. 삿포로 의과대학 의학부 졸업한 의학박사 출신이라는 특이한 경력의 작가는 1970년 데라우치 마사타를 모델로 ‘光と影’를 발표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 ‘실낙원’의 저자였다. 비교적 염정소설 계통의 소설을 주로 집필을 한 탓인지 문학관 내부의 크로커쳐도 여인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해가 진 후 홋카이도대학을 견학하면서 ‘소년이여, 꿈을 가져라’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클라크 박사의 동상 앞에서 잠시 머리를 숙이고 예의를 갖춰보기도 했다.
마지막 날에 홋카이도 도립문학관을 방문하였다. 관장과 이사장 등 관계자 전 직원이 긴장하면서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하셨는데 문학관 개관 이래 국가 차원의 문학 관계자가 팀을 이뤄 방문한 것이 처음이라며 성심을 다해 우리들을 맞이해 주셨다. 요시모토타카아키부터 ‘소년과 개’의 작가 하세 세이슈의 작품집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관 내에 하이쿠 한 수가 눈길을 끌었다. 호소야 겐지의 작품으로 <올해 또 산하가 얼어붙는 걸 아무도 막지 못했네> 였다.
이번 여행 중에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일본의 전통 시가 ‘하이쿠’였다. 단 한 두 문장의 촌철살인이 시조를 쓰는 내게 영감을 주었다. 관계자에게 혹시 하이쿠 명시를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 있냐고 물었는데 아쉽게도 없다고 하였다. 귀국하자마자 검색해서 류시화가 번역 ․ 편집한 하이쿠 명편 모음집을 사서 읽어보는 중이다.
이번 한국문학관협회에서 기획한 일본 북해도 문학관탐방은 개인적으로 의미 있던 시간이었다. 특히 전보삼회장께서는 우리 회원들이 여행 내내 불편함이 없는지 두루 살피는 모습과 적당한 카리스마, 그리고 해박한 지식으로 여행에 큰 도움을 주셨는데 진정한 리더를 찾기 어려운 요즘 시대에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셨다. 같이 동행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며 특히 이원수문학관 장진화사무국장의 수고에 깊이 감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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