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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공간 ③ |최기우 서유럽 문학여행 - 찰스디킨스 박물관
글쓴이 : 한국문학관협회 날짜 : 07.07.28 조회 : 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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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공간]


번영의 도시 뒷그늘 거장의 숨소리가…


최기우 서유럽 문학여행


 - ③ 영국 런던 `찰스 디킨스` 박물관




찰스 디킨스가 집필에 몰두했던 서재. 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런던 대영박물관 근처 도우티가 48번지에 자리잡은 찰스 디킨스 박물관, 찰스 디킨스는 이 곳에서 거주하는 짧은 기간 '픽위크 페이퍼즈'를 완성했고 '올리버 트위스트'와 '니콜라스 니클비'를 썼다.(왼쪽 상단)




런던의 거리를 걷다보면 가슴이 뭉클해질 때가 있다. 때가 낀 낡은 담벼락, 밟고 밟아 모서리가 닳아버린 보도의 돌 귀퉁이, 세밀하게 조각된 건물의 외벽과 우아한 성당들, 100∼200년은 훌쩍 넘겼을 고풍스런 집과 정원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 보면 시간의 흐름이란 이런 것이구나 깨닫게 된다. 대영박물관 근처인 도우티가(The doughty Street) 48번지도 그렇다. 18세기 후반에 지어진 빅토리아풍의 건물로, 1923년 붕괴 위협을 받았던 이 집은 ‘디킨스 펠로우쉽’(1902년 설립)에 의해 유지되었고, 1925년부터 ‘찰스디킨스박물관’이란 이름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초상으로 남은 거대한 노장


도우티가 48번지는 1837년 4월부터 1839년 12월까지 찰스 디킨스(1812~1870)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곳이다. 다른 집에서 살았던 시기보다 상대적으로 짧지만 그는 이 곳에서 「픽위크 페이퍼즈」를 완성했고, 「올리버 트위스트」와 「니콜라스 니클비」 등을 써냈다.


고즈넉한 주택가에 있는 찰스디킨스박물관은 대문 앞에서야 청녹색 기념명판을 확인하고, 박물관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거리에 잠겨 있다. 그러나 문을 열면 치열했던 한 작가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더모드가 그린 디킨스의 초상화와 그림스턴이 연필과 수채물감으로 그린 디킨스의 작은 초상화다. 쓰러지기 바로 전까지 줄곧 원고를 썼던 거대한 노장의 모습. 포츠머스에서 태어난 디킨스는 런던으로 거처를 옮긴 열두 살 소년 시절에 구두약 공장 등에서 하루 13시간씩 노동을 했다. 5파운드라는 적은 돈에 장의사 도제(徒弟)로 팔려 가는 올리버처럼, 그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몸소 체험한 사회 밑바닥 생활과 애환이 있었기에 「올리버 트위스트」같이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탄생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육필원고는 2층 전시실에 놓여있다.


찰스디킨스박물관은 다른 박물관이나 문학관과 달리 안내를 담당하는 직원이 없다. 다른 언어 사용자를 위한 배려도 부족하다. 화장실마저 한 칸, 남·녀 공용이다. 유리창을 막고 있는 쇠창살은 섬뜩했으며, 계단은 곧 부서질 듯 위태로웠다. 번영과 동시에 빈곤과 비인도적인 노동이 난무했던 19세기 전반 런던의 생활을 체험케 하는 것이 이 박물관의 특징인가 싶을 정도로, 건물 내부의 분위기도 어둡고 암울했다. 영국 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짙은 갈색 안개와 같은……. 들떠 있던 관람객들은 시나브로 불안해지다가 결국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핀다. 19세기 전반 번영을 꾀하던 영국 대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었던 빈곤과 노동착취의 그늘이 작가의 소년기와 그대로 겹쳐지기 때문이다. 런던의 뒷골목에서 ‘구두를 닦으면서 희망을 닦았다’는 그에게 소설은 구원이었으리라.


문학관은 창조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곳


이곳에는 그의 삶의 궤적을 더듬을 수 있는 유품이 꽤 많이 전시돼 있다. 아주 사소하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들이다. 디킨스가의 족보와 그의 일러스트, 그가 쓴 책들과 연재된 신문들, 각종 삽화들, 동화작가 안데르센에게 헌정한 책, 서간문, 서류, 집기도구, 그가 쓰던 티스푼, 심지어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가 빚에 몰려 갇혔던 교도소의 목제창살까지 가져다 놓았다. 당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재현해 놓은 방도 있으며, 그가 쓰던 침실과 부엌, 서재도 그대로 보관돼 전시되고 있다. 빡빡할 정도로 많은 양의 서적과 자료가 쌓여있는 그의 서재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작가의 서재. 그가 무슨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여백에 무슨 말을 써넣었는지, 누구와 교류하고 책과 편지를 나누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비밀스런 공간이다. 그곳은 지극히 사적인 곳이지만, 개인의 창작력으로 대중화하기 위한 작품을 생산하는 지극히 아이러니한 공간이기도 하다.


3층과 4층은 특히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디킨즈의 처제이자 지적 동반자였던 메리 호가스가 사망한 것은 이 곳 3층 침실에서였다. 그 충격으로 이들은 도우티가를 더 서둘러 떠났을 것이다. 4층은 디킨즈의 삶과 관련된 그림, 희귀한 발행물과 원고, 원래의 가구와 많은 기타 물건들을 관람할 수 있으며, 그와 관련된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다.


작가의 흔적, 하나 하나가 모두 역사다. 한 사회의 문화를 살찌운 문학인들이 남긴 원고와 작업노트, 편지, 사진, 메모 등은 새로운 창조 작업의 토대가 된다. 이 자료들을 거름으로 새로운 책들이 쓰여지고 영화와 연극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부가가치들이 산출된다. 작가의 소중하고 귀한 문화사적(文化史的) 자료들을 모으고 보존해서 지속적인 부가가치 생산이 일어나게 하는 곳이 문학관(박물관)이다. 머무르거나 멈춰있는 공간이 아니라 또다른 의미의 창조적인 생산기지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도정일씨(경희대 교수)는 문학관을 ‘작가가 바라본 사회의 문화사, 정신사, 사회사의 기록들과 예술적 성과들을 실물로 보존하는 기억의 사원’이며 창조와 활용의 에너지들이 뛰노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외국에서는 노먼 메일러 같은 생존 원로작가들의 아카이브를 만들기 위해 그들의 서재 물건들과 육필 메모 등 실물 자료들을 수백만 달러씩에 사들이는 도서관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왜 이리도 척박한가?


/최기우(극작가·최명희문학관 기획실장)


 전북일보 (2007.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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