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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문학관 - 안나 아흐마토바 문학관
글쓴이 : 한무숙문학관 날짜 : 06.02.25 조회 : 5238









[세계의 문학관]

안나 아흐마토바 문학관

김 호 기












▲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

  안나 아흐마토바의 시는 고난과 슬픔으로 점철된 자신의 생애와 그녀가 살던 성·페테르부르그를 노래한 것이 많다. 지난 세기 러시아 시유파 ‘아크메이즘(acmeism)’의 대표적 시인이자 당대에 풍미했던 상징주의에 반하여 자신의 생활주변의 일들을 ‘아크메’에서 포착함으로써 ‘아름다운 정확성’을 추구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문학기념관을 찾아 그녀가 살다간 발자취를 찾는 것은 그 시심을 헤아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문학관이 있는 리테이니거리의 모습은 영락없는 유럽이다

4, 5층 건물이 가지런히 이어져 있고 여기저기 있는 동네 가게들 가운데는 예외 없이 미국식 속성음식체인점이 한두 개 끼어있다.
겉에서 보면 평범한 건물이 입구에 들어서면 큰 정원을 가운데 두고 대저택이 ‘ㅁ’자로 둘러 쌓여 있다. 정원에는 아름다운 수목이 가득차 이곳이 대도시 안이라는 것을 잊게 하고 있다.
이 저택은 2백년동안 제정러시아의 한 귀족가문이 살던 곳인데 볼셰비키혁명 때 박물관과 아파트로 개조되었다.

이 저택의 좌측에 1989년 개관된 ‘안나 아흐마토바 문학관’이 들어서 있다. 이 건물 2층에서 시인은 그의 남편인 미술사가美術史家 니콜라이 푸닌과 함께 살았다.
건물에 들어서면 매표소, 비디오 쌀롱과 기념품 코너 등과 시인의 소개를 한 패널이 잘 정돈되어 있다. 전쟁 전후의 러시아 지성인들의 생활상과 아흐마토바의 생애와 문학을 소개한 패널들도 벽공간을 잘 이용해서 붙여져 있다. 2층에 들어서면 대저택 안에서 갑갑함을 느낀다. 높은 천장에 방들이 졸망졸망한 것이 어색하다. 혁명 이후 평등을 외치며 인민들이 닥쳐들어 큰 방들을 쪼개어 살았던 것이다. 〈닥터 지바고〉 영화가 실감나게 나타낸 그 으시시하고 우스꽝스런 장면이 연상된다. 그런 졸망졸망한 방 몇 개에 시인이 살던 자취가 남아 있는데 특별한 것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부엌, 침실, 거실 등이 있는데 하나같이 비좁다. 부엌에는 벽난로 페치카가 보이는데 옛 귀족들의 화려함보다는 격동기의 어려웠던 살림이 엿보인다. 당시 쓰던 등유통, 러시아의 차주전자 사모바, 식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침실과 거실의 가재도구들, 가족과 친지들의 사진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 성·페테르부르그의
안나 아흐마토바 문학관 정문

큰 저택에 여러 가구들이 들어서 살았다는데 목욕탕과 화장실은 보이지 않는다. 공용화장실이 건물 어느 구석인가에 있었다는데 사람사는 것이 참 불편했을 것이다. 시인은 이 집에서 1922년부터 30년간을 살았는데 남편 푸닌과 별거를 한 후에도 한 집에서 살았다. 스탈린 시절 사는 것이 어려워 별거한다는 것이 바로 옆방으로 ‘이사’를 한 것이었다. 이 집에서 시인은 대표작 〈진혼곡〉을 완성하고, 〈주인 없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진혼곡〉은 스탈린의 학정을 비판하는 작품이었고 〈주인 없는 시〉는 이 집을 떠나서도 10년 후에 완성한 대하 서사시이다. 이러한 시들이 스탈린정권 눈에 들 리가 없었다. 그녀는 ‘침대와 교회를 오가는 미친 여인’으로 낙인찍히고 많은 박해를 받았다. 공산주의 치하에서는 체제찬양에 가담하지 않으면 작가들이 아흐마토바처럼 박해를 받았다. 이를 견디지 못하여 많은 작가들이 서방으로 피신을 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야스코프같은 혁명 초창기때 깃발을 올렸던 시인도 스탈린의 학정을 견디지 못해 37세 젊은 나이에 자살했다.








▲ 안나가 말년을 지낸 문학관

그 와중에서도 아흐마토바는 이 집을 떠나 중앙아시아로 쫓겨갔다가 성·페테르부르그에 다시 돌아와 77세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만큼 러시아를, 성·페테르부르그를 사랑한 것이다. 시인이 떠난 지 40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녀의 간결하고도 깊이 있는 시정신이 이제 이렇게 좋은 문학관에 이어지고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맞는다. 시인과 예술가들을 박해하던 ‘혁명전사’들을 누가 작아 보였던 옛날의 피압박예술가들만큼 따뜻한 마음으로 기억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한무숙문학관 관장)

                         |이 글은 <문학의 집 서울>www.imhs.co.kr에서 옮겨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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